24개의 눈동자 - 나무위키, etc
24개의 눈동자 - 나무위키
24개의 눈동자
최근 수정 시각: 2025-05-02
키네마 준보 선정
올타임 일본 영화 베스트 10
24개의 눈동자 (1954)
二十四の瞳にじゅうしのひとみ
Twenty-Four Eyes

장르
드라마
감독
기노시타 케이스케
원작
츠보이 사카에
제작
쿠와타 료타로
각본/각색
기노시타 케이스케
출연
다카미네 히데코
아마모토 히데요
류 치슈 외
음악
기노시타 타다시[1]
촬영
구스다 히로유키
편집
스기하라 요시
제작사
쇼치쿠오후나촬영소
배급사
쇼치쿠
촬영 기간
1953년 3월 ~ 1954년 3월
개봉일
1954년 9월 14일
화면비
1.37:1
상영 시간
156분
흥행 수익
2억 3,287만 엔 (최종)
상영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시놉시스3. 등장인물4. 제작비화5. 평가
5.1. 비판5.2. 반론6. 기타
1. 개요[편집]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1954년 영화.
영화는 1928년 일본 세토내해의 한 낙도 분교에 부임하는 여교사와 그녀가 담임을 맡은 1학년 학생 12명과의 20여년간의 긴 인연을 담은 드라마이다. 기노시타 감독이 만든 영화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며 스스로도 본인의 필모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언급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954년 키네마 준보 베스트10에서 1위에 선정되었으며 당해 일본개봉 영화중에서 관객,평단,언론의 주목을 모두 끌어모았다. 이후 키네마 준보를 비롯한 각종 영화 매체는 이 영화를 쇼와시대 통틀어 ‘일본국민영화’로 친다. (동일년도에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는 3위에 선정.)
과장 좀 보태서 개봉후 관람한 일본 관객들 전부가 눈이 퉁퉁부어 극장을 나선 장면이 주요 일본의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일본 최루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 시놉시스[편집]
기노시타 감독 100주년 기념으로 쇼치쿠에서 복원판[2]으로 공개한 24개의 눈동자 예고편
일본 세토내해(혼슈 섬과 시코쿠 섬 그리고 규슈 섬 사이의 좁은 바다)의 수많은 섬 중 아와지시마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시마. 10년을 먼 옛날이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먼 옛날보다 두 배는 먼 옛날이야기다. 이 섬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 미사키의 분교에 다니고 5학년이 되면 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혼무라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1928년 4월 4일... 양장 차림의 젊은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린다. 그 젊은 여인은 미사키의 분교로 새로 부임한 오이시 선생님이다. 쇼도시마의 주민들과 학생들은 새로 온 선생님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오이시 선생님의 정성 어린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어느 날, 야외 수업에서 다리를 다친 오이시 선생님은 집에서 먼 거리였던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고 만다. 오이시 선생님의 12명의 제자들은 오이시 선생님을 걱정하며 무작정 오이시 선생님의 집으로 향하는데…
3. 등장인물[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이시 히사코(다카미네 히데코)[3]
여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1928년(쇼와3년) 첫 부임지로 쇼도시마의 미사키 분교에 부임하는 여교사. 학교에 첫 출근부터 양장을 입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그녀를 보고 섬 주민들은 혀를 끌끌차고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멋쟁이 모던걸이다’를 연발한다.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놓치지 않고 오직 가르치는 아이들만 생각하는 헌신적인 스승의 모습. 그러나 그녀의 아이들은 가난과 빈곤으로 상처받고 도시로 팔려나가거나 생계일에 학교마저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어만 간다. 이런 제자들의 상황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 하지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더욱 좌절하게 된다.
미사키 분교 남자선생님(크레딧 기재상)(류 치슈)
미사키 분교에 오이시 선생님과 같이 근무하는 남자선생님. 정식 교사 자격증은 없는 선생님(대용교원)[4]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서툴고 눈높이에 맞지 않는 듯하다. (오르간을 칠 줄 몰라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데 영 소질이 없다.) 오이시 선생이 부임 첫날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가르치는 방식에 주눅이 든듯 “왜 본교 교장선생은 이런 신식교사를 낙도오지 미사키에 보낼 생각을 했을까” 툴툴거리기도.
오이시 히사코의 남편(아마모토 히데요[5])
오이시 선생님의 남편. 섬 사이를 오가는 페리의 항해사로 오이시 선생과 연애하다가 결혼한 것으로 영화에서는 나온다. 오이시 선생이 “엄마가 뱃사람이랑 결혼해서 고생하는 걸 뻔히 다 봐왔으면서 왜 나도 뱃사람이랑 결혼해서 이 고생일까?” 라고 남편에게 투덜대자 그는 “니가 결혼하자고 매달렸자나” 라고 시크하게 달래주는 쾌남아(?). 태평양 전쟁이 본격 시작되자 다른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징집영장을 받고 전쟁터로 나가 전사한다.
미사키 분교의 오이시 선생님의 12명 제자들 - 극중 이름(실명/"극중 별명")순

오카다 이소요시(고고 히데키/별명”손키”)
다케시타 타케이치(와타나베 고)
도쿠다 키치지(미야가와 마코토/별명 “키친”)

모리오카 타다시(테라시타 유로/별명 “탄코”)
아이자와 니타(사토 쿠니오/별명 “니쿠타”)
카와모토 마츠에(쿠사노 시게노/별명”맛짱”)

니시구치 미사코(코이케 타이요/별명”미상이”)
카가와 마스노(이시이 유코/별명 “마상”)
키노시타 후지코(카미하라 카에리/별명 “후지짱”)

야마이시 사나에(카세 카루우)
카타기리 코토에(우에하라 히로코)
카베 코츠루(타나베 유미코)
4. 제작비화[편집]
1952년에 발표한 츠보이 사카에의 동명소설 “24개의 눈동자”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1952년에 원작소설 발표직후 기노시타 감독은 소설을 접하고 바로 영화화를 결정하고 쇼치쿠에 영화기획을 알린다. 당시 같은 종류의 일본 영화치고는 제작기간이 유별나게 긴 편이었는데 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24명의 아역들의 학교 수업일정이 큰 이유였다고 한다. 방학기간동안 촬영해야 했고 아역 12명과 이들이 성장해 청소년기의 배우들 12명, 성년기의 배우들 6명의 캐스팅과 촬영등을 병행해야 했음으로 제작기간이 유례없이 1년을 약간 넘겨버린 것이다.
당시 기노시타 감독이 직접 각색을 했는데 1952년 12월에 원작소설발표, 1953년 3월 촬영및 제작시작, 1954년 3월 촬영종료 및 후반기 작업시작, 1954년 9월 개봉으로 살인적인 제작스케줄이 이어져서 각색작업이 엄청난 스피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그 당시 다카미네 히데코가 역시 주연을 맡은 “여자의 정원”도 감독하여 한창 촬영중이었다. 1953년에 2개 영화를 동시에 제작하고 있던 것이었다. 쇼치쿠 내에서는 “역시 천재감독은 다르다” 라며 한동안 기노시타 감독의 제작능력을 칭송하는 평판이 돌았다고. 그도 그럴것이 “여자의 정원”이 1954년 3월 개봉, “24개의 눈동자”가 당해 9월 개봉 예정이었으니 쇼치쿠 내부에서도 과연 예정대로 개봉이 될 수 있을지 염려가 팽배했던 것. 그러나 보란듯이 개봉일정을 예정대로 모두 맞췄고 “24개의 눈동자”와 “여자의 정원” 둘다 나란히 키네마 준보 1위,2위를 독식하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으니 쇼치쿠가 괜히 “천재감독” 운운한게 아닌듯하다. (더군다나 그때 3위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였다. 쇼치쿠 100주년 기념 홈페이지https://movies.shochiku.co.jp/100th/nijushinohitomi/에서는 “24개의 눈동자”를 홍보하면서 “구로사와의 ‘7인의 사무라이’를 앞선 작품성”이라고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 해외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위상을 생각하면 쇼치쿠의 이런 치기어린 패기가 어이없을 뿐.)
아역을 맡은 배우들 캐스팅도 당시에 주목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역할로 12명, 그리고 6학년 역할로 12명 모두 24명의 아역들을 캐스팅해야 했는데 쇼치쿠가 일본 전역에서 닮은 형제,자매들로 3600조, 7200명의 일반 아이들을 수소문해서 사진촬영, 테스트를 거쳐 12조 24명을 최종 캐스팅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대규모 캐스팅, 더군다나 아역에다가 외모가 닮고 5-6년 터울의 형제,자매를 선발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기에 쇼치쿠의 기획부서는 캐스팅에 진땀을 뺐다고. 거기다가 성년 역할을 해야하는 배우 6명도 일단 연기력은 뒷전이고 외모가 비슷해야 하는게 1순위여서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모인 인연 덕분인지 몰라도 이때 출연했던 아역들이 아직까지도 모여 동창회(?)를 열며 서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모임의 이름은 “눈동자회”. 이들중 다수가 기노시타 감독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회상하는 “24개의 눈동자” 촬영현장은 학교에서 보냈던 시간들과 똑같을 정도로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고 한다.
5. 평가[편집]
극중 오이시 선생과 아이들의 기차놀이 중
오사카에 양녀로 팔려간 마츠에가
수학여행을 온 급우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통곡하는 장면중
“Twenty-Four Eyes”, the film's anti-war message is "aimed more directly at Japan" compared to films with a similar message by Yasujirō Ozu or Akira Kurosawa.
“24개의 눈동자”의 반전메시지는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비슷한 비판메시지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
― 오비 복, 영화학자
Kinoshita desires to make the basic decency of one woman [Ōishi] stand in opposition to the entire militarist era in Japan.
기노시타 케이스케는 일본의 어두운 군국주의 시대에 저항했던 한 여성(오이시)의 고결한 품격을 (이 영화를 통해) 세우고 싶어한다.
― 데이비드 데서(David Dessert), 일리노이 대학 영화학과 교수 및 미 시네마 저널 편집장
"Sentimental but sincere."
감상적이지만 진심인 영화
― Empire 매거진
“24개의 눈동자”를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최고작로 뽑기에는 충분히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작품(일본영화)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중략) 시대의 아픔에 직면한 이들의 슬픔을 강조하는 영화의 순진한 시각은 어떤 이들, 이를테면 좀더 강직한 누벨바그 세대 감독들에게는 비난과 배척의 대상이 될 만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가 당대 일본 관객에게 감동을 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씨네21
일본내에서의 평가는 “진부한 최루성 영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해외의 평가는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태평양 전쟁중에 발표한 초기 4작품 - “꽃피는 항구/花咲く港“,”살아있는 마고로쿠/生きてゐる孫六“,”환호의 도시/歓呼の町”,”육군/陸軍“ 과 연관지어 영화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해외 평론가들의 평론이 대부분 이들 초기 4작품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노시타 감독의 작품중 크라이테리온을 통해 발매된 것은 초기 4작품과 나라야마 부시코, 오손 가족을 위한 아침, 그리고 24개의 눈동자 뿐이다.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미조구치 겐지의 작품들 대부분이 크라이테리온을 통해 해외에 소개되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
5.1. 비판[편집]
한정선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는 동북아역사논총에 기고한 학술기고문을 통해 “24개의 눈동자”가 일본의 전후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의식을 지우는 것에 노력에 일조한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한정선 조교수는 일본의 ‘반전주의’와 ‘평화주의’가 인류 최초의 원폭 피해자라는 트라우마에 의존한 ‘피해자 의식’속에서 탄생된 것이라고 전재하고 전쟁의 서사구조에서 여성은 “전쟁가치에 반대하는 아름다운 영혼”으로 묘사되기에 “24개의 눈동자” 영화의 주인공인 오이시 선생은 서사구조에서 부여받은 직위인 여성상-어머니에서 일본 국민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곡쟁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다소 과격한 비판을 제시하였다.
전쟁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상처받지 않은 모’로 수렴된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여성은 전시에는 후방에서 파괴와 상실에서 오는 고통을 인내하는 자로, 전후에는 폐허 속에서 인고하며 동시에 상처받은 남성성을 위로하는 자로 설정된다. 다시 말하면,‘상주’일본에 의해 고용된‘곡쟁이’로서 전후 여성상이 설정되었다. 이처럼 인고하며 대신 울어 주는 여성성은 패전으로 ‘거세’된 일본의 남성성이 여성의 신체에 투영되면서, 즉 남성성 내부의 원치 않는 부분이 여성 타자에게로 이전되면서‘상처받은 남성성’이 치유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치유과정은 평화와 반전이라는 새로운 일본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필요조건이기도 하였다. 전후 일본의 영상매체는 이와 같은‘상처받은 남성성’의 치유를 위한 수단으로‘상처받지 않은 모’라는 전후 여성성 재정립을 시도하였고, 이를‘감상적 상상력(melodramatic imagination)’을 통해 극적으로 재현하였다….
눈물에 호소하는 감상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전후 일본의‘반전’과‘평화’의 감수성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한 고전적인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24개의 눈동자」이다. 기노시타 감독은 감상성의 극대화를 통한 반전사상을 고취하려던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여성의 눈물로 만들어진 감상적 공동체의 기본 정서는 유년기의 순진함 그리고 이 순진함에 대한 향수다. 이는 영화와 드라마 모두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삽입되는 유년기에 찍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유년기의 사진이 만들어 내는 순진한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일반 일본인들은 국가와 군이 행한 전쟁 범죄로부터 결백하 다는 증언을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시각화된 순진함은 동시에 과거에 행했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는 오늘날 일본인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 한정선 “전후 일본의 곡쟁이 - 일본 “반전” 영화에 나타난 여성
5.2. 반론[편집]
일본의 패전 이후로 일본사회에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정체성을 성립하는 것에 “비극적 개체”로서 여성과 여성의 눈물이 크게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일본이 패전 이후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추구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위에서 세워진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일본의 전후 세대가 과거 일본제국시절 자행된 전쟁범죄에 대한 인지와 반성을 회피하려는 경향은 확실히 존재하며 이는 일본이 패전이후 확실한 전쟁범죄에 대한 청산과 단죄를 하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된 것임이 명확하다.
그러나 일본의 우경화 및 전쟁범죄회피를 논하면서 1954년에 개봉한 일본영화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옳은 일인가는 여전히 의문이 붙는다. 영화로만 놓고 1950년부터의 일본을 평하자면 전후 패전의 영향과 미 점령군의 가혹한 검열통제로 인해 일본 영화 제작과정에 사실상 과거 제국주의 미화,찬양,부활주장등이 들어갈 여지는 적어도 1960년대 말까지는 원천 차단되었다.[6]
위 주장에 힘을 싣는 사례는 오히려 1954년 “24개의 눈동자” 이후 리메이크 작들에게서 발견된다. “24개의 눈동자”는 11개의 리메이크작이 나왔는데[7] 일본에서 11번의 리메이크 작이 탄생한 영화는 “24개의 눈동자”가 유일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장 최근의 리메이크 작은 테레비 아사히에서 2013년 제작방송한 TV드라마 시리즈 <24개의 눈동자/제목동일>로 마츠시타 나오가 주연으로 등장한 작품이다. 1954년작과 비교해보면 이게 같은 원작에서 나온 리메이크 작인가 생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다른데, 기노시타 감독의 원작에서 거침없이 표현되었던 반전,사회비판 등의 부분은 모두 사라지고, 외딴 섬 분교의 아름다운 추억등이 중심이 되는 그냥 드라마로 바뀌었다. 1954년 원작이 가지고 있던 반전,평화지향 사상등은 이후 11번의 리메이크 작들에게서 점점 축소되거나 왜곡되어져 왔으며 가장 최근의 리메이크 작은 아예 평범한 범작도 못되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위 한정선의 논문에서도 우경화된 일본 사회의 분위기을 반영하여 원작 드라마에 담겨있던 반전과 사회비평 분위기가 점점 낮아졌음을 지적하는데 그 지적방향을 살펴보면 전쟁을 겪은 세대에서 겪지 못한 세대로 이행함에 있어 과거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6. 기타[편집]
이 영화의 원작자부터 제작자,감독,제작스태프 전부를 포함하여 여자주인공(다카미네 히데코)까지도 모두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몸소 겪었던 사람들이다. 일부 아역들 역시도 일본 패전 이전에 태어났음으로 영화 제작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전쟁의 참혹한 시기를 겪어보았던 터라 영화가 가지는 강한 반전메시지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츠보이 사카에의 원작 소설에는 지명을 포함해 일절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세토내해 어느 섬마을' 정도로 서술되어 있으나 원작자인 츠보이 사카에의 고향이 쇼도시마초라서 기노시타 감독이 영화의 무대를 쇼도시마초로 골랐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로는 드물게 올로케 야외촬영 영화이다. 영화의 흥행으로 쇼도시마초와 카가와현은 이 영화를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로 아낀다. 아예 24개의 눈동자/키노시타 케이스케 박물관도 [8] 있을 정도. 한국에서는 1971년 발행한 계몽사판 소년소녀 세계명작 29권 동양편에 번역 소개 되었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이 영화 개봉 다음해 1955년 이 영화 조감독이었던 마츠야마 젠조와 결혼했다.
쇼치쿠의 주도로 "기노시타 100주년"기념 위원회가 2013년 발족되고 쇼치쿠에서 복원판을 제작하여 DVD릴리즈 한 바 있다. 복원은 일본의 IMAGICA 가 맡았다.
2006년 영국 'Eureka Entertainment'에서 "마스터 시네마" 시리즈에 포함시켜 공개하였으며, 2008년 크라이테리온에서도 공개했다. 둘 다 복원판은 아니지만 영문 자막이 포함되어 있다.
2022년에 특집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유튜브
[1] 기노시타 감독의 남동생[2] 일본 IMAGICA 사에서 쇼치쿠로부터 복원의뢰를 받아 복원을 진행했으며 복원후 퀄리티가 놀랄만큼 뛰어나 쇼치쿠에서 꽤나 만족했다고 한다.[3] 1954년 이 작품과 역시 주연을 맡은 기노시타 감독의"여자의 정원"으로 키네마 준보베스트 1위,2위를 차지했으며 블루리본상 여우주연상,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그녀의 영화 커리어 최정점을 찍는다.[4] 1872년(메이지5년) 일본은 포고령을 통해 일본역사 처음으로 근대적이고 체계적인 학교제도를 발표하고 전국민 의무교육제도의 틀을 만든다. 일본 사회에서 엄청난 변화중 하나인데, 교원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자 초등과 중등 그리고 고등 일부에서도 무자격 교원이 일선교육을 담당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생겨났다. 이에 1900년(메이지33년)에 초등학교령을 대대적으로 개정하여 초등학교에서 교원자격증이 없는 구제중학교,고등여학교 혹은 특수과목에 한해 고등 초등학교 졸업생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현실과 타협했다. 이후 적극적으로 이들 대용교원들에게 사범학교를 이수하게 하여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유도하거나 타 직업 으로서의 전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1949년(쇼와24년)에는 교육 직원 면허법을 전면 개정하여 일본의 모든 학교에서 교사는 사범 대학을 통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자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대용교원이란 직업은 사라지게 되었다.[5] 도호소속 전속영화배우. 가면라이더의 사신박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6] 그나마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조차도 68혁명과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이전까지는 나치에 대한 비판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으며, 상당수의 나치 인사들이 공직에 재차 진출하기도 했다.[7] 영화로는 2회, TV드라마로 8회, 애니메이션으로 1회[8] 이 곳은 예술영화관으로도 운영 중이다.
24개의 눈동자
최근 수정 시각: 2025-05-02
키네마 준보 선정
올타임 일본 영화 베스트 10
24개의 눈동자 (1954)
二十四の瞳にじゅうしのひとみ
Twenty-Four Eyes

장르
드라마
감독
기노시타 케이스케
원작
츠보이 사카에
제작
쿠와타 료타로
각본/각색
기노시타 케이스케
출연
다카미네 히데코
아마모토 히데요
류 치슈 외
음악
기노시타 타다시[1]
촬영
구스다 히로유키
편집
스기하라 요시
제작사
쇼치쿠오후나촬영소
배급사
쇼치쿠
촬영 기간
1953년 3월 ~ 1954년 3월
개봉일
1954년 9월 14일
화면비
1.37:1
상영 시간
156분
흥행 수익
2억 3,287만 엔 (최종)
상영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시놉시스3. 등장인물4. 제작비화5. 평가
5.1. 비판5.2. 반론6. 기타
1. 개요[편집]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1954년 영화.
영화는 1928년 일본 세토내해의 한 낙도 분교에 부임하는 여교사와 그녀가 담임을 맡은 1학년 학생 12명과의 20여년간의 긴 인연을 담은 드라마이다. 기노시타 감독이 만든 영화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며 스스로도 본인의 필모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언급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954년 키네마 준보 베스트10에서 1위에 선정되었으며 당해 일본개봉 영화중에서 관객,평단,언론의 주목을 모두 끌어모았다. 이후 키네마 준보를 비롯한 각종 영화 매체는 이 영화를 쇼와시대 통틀어 ‘일본국민영화’로 친다. (동일년도에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는 3위에 선정.)
과장 좀 보태서 개봉후 관람한 일본 관객들 전부가 눈이 퉁퉁부어 극장을 나선 장면이 주요 일본의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일본 최루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 시놉시스[편집]
기노시타 감독 100주년 기념으로 쇼치쿠에서 복원판[2]으로 공개한 24개의 눈동자 예고편
일본 세토내해(혼슈 섬과 시코쿠 섬 그리고 규슈 섬 사이의 좁은 바다)의 수많은 섬 중 아와지시마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시마. 10년을 먼 옛날이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는 먼 옛날보다 두 배는 먼 옛날이야기다. 이 섬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 미사키의 분교에 다니고 5학년이 되면 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혼무라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1928년 4월 4일... 양장 차림의 젊은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린다. 그 젊은 여인은 미사키의 분교로 새로 부임한 오이시 선생님이다. 쇼도시마의 주민들과 학생들은 새로 온 선생님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오이시 선생님의 정성 어린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어느 날, 야외 수업에서 다리를 다친 오이시 선생님은 집에서 먼 거리였던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고 만다. 오이시 선생님의 12명의 제자들은 오이시 선생님을 걱정하며 무작정 오이시 선생님의 집으로 향하는데…
3. 등장인물[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이시 히사코(다카미네 히데코)[3]여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1928년(쇼와3년) 첫 부임지로 쇼도시마의 미사키 분교에 부임하는 여교사. 학교에 첫 출근부터 양장을 입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그녀를 보고 섬 주민들은 혀를 끌끌차고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멋쟁이 모던걸이다’를 연발한다.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놓치지 않고 오직 가르치는 아이들만 생각하는 헌신적인 스승의 모습. 그러나 그녀의 아이들은 가난과 빈곤으로 상처받고 도시로 팔려나가거나 생계일에 학교마저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늘어만 간다. 이런 제자들의 상황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 하지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더욱 좌절하게 된다.
미사키 분교 남자선생님(크레딧 기재상)(류 치슈)미사키 분교에 오이시 선생님과 같이 근무하는 남자선생님. 정식 교사 자격증은 없는 선생님(대용교원)[4]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서툴고 눈높이에 맞지 않는 듯하다. (오르간을 칠 줄 몰라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데 영 소질이 없다.) 오이시 선생이 부임 첫날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가르치는 방식에 주눅이 든듯 “왜 본교 교장선생은 이런 신식교사를 낙도오지 미사키에 보낼 생각을 했을까” 툴툴거리기도.
오이시 히사코의 남편(아마모토 히데요[5])오이시 선생님의 남편. 섬 사이를 오가는 페리의 항해사로 오이시 선생과 연애하다가 결혼한 것으로 영화에서는 나온다. 오이시 선생이 “엄마가 뱃사람이랑 결혼해서 고생하는 걸 뻔히 다 봐왔으면서 왜 나도 뱃사람이랑 결혼해서 이 고생일까?” 라고 남편에게 투덜대자 그는 “니가 결혼하자고 매달렸자나” 라고 시크하게 달래주는 쾌남아(?). 태평양 전쟁이 본격 시작되자 다른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징집영장을 받고 전쟁터로 나가 전사한다.
미사키 분교의 오이시 선생님의 12명 제자들 - 극중 이름(실명/"극중 별명")순

오카다 이소요시(고고 히데키/별명”손키”)
다케시타 타케이치(와타나베 고)
도쿠다 키치지(미야가와 마코토/별명 “키친”)

모리오카 타다시(테라시타 유로/별명 “탄코”)
아이자와 니타(사토 쿠니오/별명 “니쿠타”)
카와모토 마츠에(쿠사노 시게노/별명”맛짱”)

니시구치 미사코(코이케 타이요/별명”미상이”)
카가와 마스노(이시이 유코/별명 “마상”)
키노시타 후지코(카미하라 카에리/별명 “후지짱”)

야마이시 사나에(카세 카루우)
카타기리 코토에(우에하라 히로코)
카베 코츠루(타나베 유미코)
4. 제작비화[편집]
1952년에 발표한 츠보이 사카에의 동명소설 “24개의 눈동자”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1952년에 원작소설 발표직후 기노시타 감독은 소설을 접하고 바로 영화화를 결정하고 쇼치쿠에 영화기획을 알린다. 당시 같은 종류의 일본 영화치고는 제작기간이 유별나게 긴 편이었는데 영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24명의 아역들의 학교 수업일정이 큰 이유였다고 한다. 방학기간동안 촬영해야 했고 아역 12명과 이들이 성장해 청소년기의 배우들 12명, 성년기의 배우들 6명의 캐스팅과 촬영등을 병행해야 했음으로 제작기간이 유례없이 1년을 약간 넘겨버린 것이다.
당시 기노시타 감독이 직접 각색을 했는데 1952년 12월에 원작소설발표, 1953년 3월 촬영및 제작시작, 1954년 3월 촬영종료 및 후반기 작업시작, 1954년 9월 개봉으로 살인적인 제작스케줄이 이어져서 각색작업이 엄청난 스피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그 당시 다카미네 히데코가 역시 주연을 맡은 “여자의 정원”도 감독하여 한창 촬영중이었다. 1953년에 2개 영화를 동시에 제작하고 있던 것이었다. 쇼치쿠 내에서는 “역시 천재감독은 다르다” 라며 한동안 기노시타 감독의 제작능력을 칭송하는 평판이 돌았다고. 그도 그럴것이 “여자의 정원”이 1954년 3월 개봉, “24개의 눈동자”가 당해 9월 개봉 예정이었으니 쇼치쿠 내부에서도 과연 예정대로 개봉이 될 수 있을지 염려가 팽배했던 것. 그러나 보란듯이 개봉일정을 예정대로 모두 맞췄고 “24개의 눈동자”와 “여자의 정원” 둘다 나란히 키네마 준보 1위,2위를 독식하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으니 쇼치쿠가 괜히 “천재감독” 운운한게 아닌듯하다. (더군다나 그때 3위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였다. 쇼치쿠 100주년 기념 홈페이지https://movies.shochiku.co.jp/100th/nijushinohitomi/에서는 “24개의 눈동자”를 홍보하면서 “구로사와의 ‘7인의 사무라이’를 앞선 작품성”이라고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 해외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위상을 생각하면 쇼치쿠의 이런 치기어린 패기가 어이없을 뿐.)
아역을 맡은 배우들 캐스팅도 당시에 주목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역할로 12명, 그리고 6학년 역할로 12명 모두 24명의 아역들을 캐스팅해야 했는데 쇼치쿠가 일본 전역에서 닮은 형제,자매들로 3600조, 7200명의 일반 아이들을 수소문해서 사진촬영, 테스트를 거쳐 12조 24명을 최종 캐스팅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대규모 캐스팅, 더군다나 아역에다가 외모가 닮고 5-6년 터울의 형제,자매를 선발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기에 쇼치쿠의 기획부서는 캐스팅에 진땀을 뺐다고. 거기다가 성년 역할을 해야하는 배우 6명도 일단 연기력은 뒷전이고 외모가 비슷해야 하는게 1순위여서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모인 인연 덕분인지 몰라도 이때 출연했던 아역들이 아직까지도 모여 동창회(?)를 열며 서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모임의 이름은 “눈동자회”. 이들중 다수가 기노시타 감독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회상하는 “24개의 눈동자” 촬영현장은 학교에서 보냈던 시간들과 똑같을 정도로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고 한다.
5. 평가[편집]
극중 오이시 선생과 아이들의 기차놀이 중
오사카에 양녀로 팔려간 마츠에가
수학여행을 온 급우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통곡하는 장면중
“Twenty-Four Eyes”, the film's anti-war message is "aimed more directly at Japan" compared to films with a similar message by Yasujirō Ozu or Akira Kurosawa.
“24개의 눈동자”의 반전메시지는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비슷한 비판메시지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
― 오비 복, 영화학자
Kinoshita desires to make the basic decency of one woman [Ōishi] stand in opposition to the entire militarist era in Japan.
기노시타 케이스케는 일본의 어두운 군국주의 시대에 저항했던 한 여성(오이시)의 고결한 품격을 (이 영화를 통해) 세우고 싶어한다.
― 데이비드 데서(David Dessert), 일리노이 대학 영화학과 교수 및 미 시네마 저널 편집장
"Sentimental but sincere."
감상적이지만 진심인 영화
― Empire 매거진
“24개의 눈동자”를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최고작로 뽑기에는 충분히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작품(일본영화)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중략) 시대의 아픔에 직면한 이들의 슬픔을 강조하는 영화의 순진한 시각은 어떤 이들, 이를테면 좀더 강직한 누벨바그 세대 감독들에게는 비난과 배척의 대상이 될 만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가 당대 일본 관객에게 감동을 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씨네21
일본내에서의 평가는 “진부한 최루성 영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해외의 평가는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태평양 전쟁중에 발표한 초기 4작품 - “꽃피는 항구/花咲く港“,”살아있는 마고로쿠/生きてゐる孫六“,”환호의 도시/歓呼の町”,”육군/陸軍“ 과 연관지어 영화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해외 평론가들의 평론이 대부분 이들 초기 4작품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노시타 감독의 작품중 크라이테리온을 통해 발매된 것은 초기 4작품과 나라야마 부시코, 오손 가족을 위한 아침, 그리고 24개의 눈동자 뿐이다.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미조구치 겐지의 작품들 대부분이 크라이테리온을 통해 해외에 소개되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
5.1. 비판[편집]
한정선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는 동북아역사논총에 기고한 학술기고문을 통해 “24개의 눈동자”가 일본의 전후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의식을 지우는 것에 노력에 일조한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한정선 조교수는 일본의 ‘반전주의’와 ‘평화주의’가 인류 최초의 원폭 피해자라는 트라우마에 의존한 ‘피해자 의식’속에서 탄생된 것이라고 전재하고 전쟁의 서사구조에서 여성은 “전쟁가치에 반대하는 아름다운 영혼”으로 묘사되기에 “24개의 눈동자” 영화의 주인공인 오이시 선생은 서사구조에서 부여받은 직위인 여성상-어머니에서 일본 국민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곡쟁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다소 과격한 비판을 제시하였다.
전쟁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상처받지 않은 모’로 수렴된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여성은 전시에는 후방에서 파괴와 상실에서 오는 고통을 인내하는 자로, 전후에는 폐허 속에서 인고하며 동시에 상처받은 남성성을 위로하는 자로 설정된다. 다시 말하면,‘상주’일본에 의해 고용된‘곡쟁이’로서 전후 여성상이 설정되었다. 이처럼 인고하며 대신 울어 주는 여성성은 패전으로 ‘거세’된 일본의 남성성이 여성의 신체에 투영되면서, 즉 남성성 내부의 원치 않는 부분이 여성 타자에게로 이전되면서‘상처받은 남성성’이 치유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치유과정은 평화와 반전이라는 새로운 일본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필요조건이기도 하였다. 전후 일본의 영상매체는 이와 같은‘상처받은 남성성’의 치유를 위한 수단으로‘상처받지 않은 모’라는 전후 여성성 재정립을 시도하였고, 이를‘감상적 상상력(melodramatic imagination)’을 통해 극적으로 재현하였다….
눈물에 호소하는 감상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전후 일본의‘반전’과‘평화’의 감수성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한 고전적인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24개의 눈동자」이다. 기노시타 감독은 감상성의 극대화를 통한 반전사상을 고취하려던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여성의 눈물로 만들어진 감상적 공동체의 기본 정서는 유년기의 순진함 그리고 이 순진함에 대한 향수다. 이는 영화와 드라마 모두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삽입되는 유년기에 찍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유년기의 사진이 만들어 내는 순진한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일반 일본인들은 국가와 군이 행한 전쟁 범죄로부터 결백하 다는 증언을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시각화된 순진함은 동시에 과거에 행했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는 오늘날 일본인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 한정선 “전후 일본의 곡쟁이 - 일본 “반전” 영화에 나타난 여성
5.2. 반론[편집]
일본의 패전 이후로 일본사회에 “반전주의”와 “평화주의” 정체성을 성립하는 것에 “비극적 개체”로서 여성과 여성의 눈물이 크게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일본이 패전 이후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추구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위에서 세워진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일본의 전후 세대가 과거 일본제국시절 자행된 전쟁범죄에 대한 인지와 반성을 회피하려는 경향은 확실히 존재하며 이는 일본이 패전이후 확실한 전쟁범죄에 대한 청산과 단죄를 하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된 것임이 명확하다.
그러나 일본의 우경화 및 전쟁범죄회피를 논하면서 1954년에 개봉한 일본영화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옳은 일인가는 여전히 의문이 붙는다. 영화로만 놓고 1950년부터의 일본을 평하자면 전후 패전의 영향과 미 점령군의 가혹한 검열통제로 인해 일본 영화 제작과정에 사실상 과거 제국주의 미화,찬양,부활주장등이 들어갈 여지는 적어도 1960년대 말까지는 원천 차단되었다.[6]
위 주장에 힘을 싣는 사례는 오히려 1954년 “24개의 눈동자” 이후 리메이크 작들에게서 발견된다. “24개의 눈동자”는 11개의 리메이크작이 나왔는데[7] 일본에서 11번의 리메이크 작이 탄생한 영화는 “24개의 눈동자”가 유일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장 최근의 리메이크 작은 테레비 아사히에서 2013년 제작방송한 TV드라마 시리즈 <24개의 눈동자/제목동일>로 마츠시타 나오가 주연으로 등장한 작품이다. 1954년작과 비교해보면 이게 같은 원작에서 나온 리메이크 작인가 생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다른데, 기노시타 감독의 원작에서 거침없이 표현되었던 반전,사회비판 등의 부분은 모두 사라지고, 외딴 섬 분교의 아름다운 추억등이 중심이 되는 그냥 드라마로 바뀌었다. 1954년 원작이 가지고 있던 반전,평화지향 사상등은 이후 11번의 리메이크 작들에게서 점점 축소되거나 왜곡되어져 왔으며 가장 최근의 리메이크 작은 아예 평범한 범작도 못되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위 한정선의 논문에서도 우경화된 일본 사회의 분위기을 반영하여 원작 드라마에 담겨있던 반전과 사회비평 분위기가 점점 낮아졌음을 지적하는데 그 지적방향을 살펴보면 전쟁을 겪은 세대에서 겪지 못한 세대로 이행함에 있어 과거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6. 기타[편집]
이 영화의 원작자부터 제작자,감독,제작스태프 전부를 포함하여 여자주인공(다카미네 히데코)까지도 모두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몸소 겪었던 사람들이다. 일부 아역들 역시도 일본 패전 이전에 태어났음으로 영화 제작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전쟁의 참혹한 시기를 겪어보았던 터라 영화가 가지는 강한 반전메시지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츠보이 사카에의 원작 소설에는 지명을 포함해 일절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세토내해 어느 섬마을' 정도로 서술되어 있으나 원작자인 츠보이 사카에의 고향이 쇼도시마초라서 기노시타 감독이 영화의 무대를 쇼도시마초로 골랐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로는 드물게 올로케 야외촬영 영화이다. 영화의 흥행으로 쇼도시마초와 카가와현은 이 영화를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로 아낀다. 아예 24개의 눈동자/키노시타 케이스케 박물관도 [8] 있을 정도. 한국에서는 1971년 발행한 계몽사판 소년소녀 세계명작 29권 동양편에 번역 소개 되었다.
다카미네 히데코는 이 영화 개봉 다음해 1955년 이 영화 조감독이었던 마츠야마 젠조와 결혼했다.
쇼치쿠의 주도로 "기노시타 100주년"기념 위원회가 2013년 발족되고 쇼치쿠에서 복원판을 제작하여 DVD릴리즈 한 바 있다. 복원은 일본의 IMAGICA 가 맡았다.
2006년 영국 'Eureka Entertainment'에서 "마스터 시네마" 시리즈에 포함시켜 공개하였으며, 2008년 크라이테리온에서도 공개했다. 둘 다 복원판은 아니지만 영문 자막이 포함되어 있다.
2022년에 특집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유튜브
[1] 기노시타 감독의 남동생[2] 일본 IMAGICA 사에서 쇼치쿠로부터 복원의뢰를 받아 복원을 진행했으며 복원후 퀄리티가 놀랄만큼 뛰어나 쇼치쿠에서 꽤나 만족했다고 한다.[3] 1954년 이 작품과 역시 주연을 맡은 기노시타 감독의"여자의 정원"으로 키네마 준보베스트 1위,2위를 차지했으며 블루리본상 여우주연상,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그녀의 영화 커리어 최정점을 찍는다.[4] 1872년(메이지5년) 일본은 포고령을 통해 일본역사 처음으로 근대적이고 체계적인 학교제도를 발표하고 전국민 의무교육제도의 틀을 만든다. 일본 사회에서 엄청난 변화중 하나인데, 교원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자 초등과 중등 그리고 고등 일부에서도 무자격 교원이 일선교육을 담당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생겨났다. 이에 1900년(메이지33년)에 초등학교령을 대대적으로 개정하여 초등학교에서 교원자격증이 없는 구제중학교,고등여학교 혹은 특수과목에 한해 고등 초등학교 졸업생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현실과 타협했다. 이후 적극적으로 이들 대용교원들에게 사범학교를 이수하게 하여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유도하거나 타 직업 으로서의 전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1949년(쇼와24년)에는 교육 직원 면허법을 전면 개정하여 일본의 모든 학교에서 교사는 사범 대학을 통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자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대용교원이란 직업은 사라지게 되었다.[5] 도호소속 전속영화배우. 가면라이더의 사신박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6] 그나마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조차도 68혁명과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이전까지는 나치에 대한 비판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으며, 상당수의 나치 인사들이 공직에 재차 진출하기도 했다.[7] 영화로는 2회, TV드라마로 8회, 애니메이션으로 1회[8] 이 곳은 예술영화관으로도 운영 중이다.
===
https://m.blog.naver.com/iveen/40024087811
스물네 개의 눈동자 : 二十四の瞳,1954

iveen
2006. 5. 1. 22:08
24개의 눈동자 : 二十四の瞳,1954
감독 :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주연 : 타카미네 히데코(高峯秀子)
원작 : 츠보이 사카에(壺井栄)
출시사(예정) : (주)피터팬픽쳐스

<홍성진의 영화해설>
전 일본열도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었던 감동 대작. 섬을 배경으로 한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풍경화처럼 아름다우며, 그 속에 소박한 사람들의 사랑과 눈물이 녹아있다. 전국민적 흥행을 기록하면서 일본 열도가 열풍에 휩쓸리게 했던 영화.
츠네이시 후미꼬(常石史子: 동경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 소개 글.
일본 내에서 30개 이상의 영화상을 독점하고 국민적으로 대히트를 한 문자 그대로의 감동대작. 츠보이 사카에(壺井)가 1952년에 발표한 아동 소설을 기예의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介)가 각본, 감독. 쇼도시마(小豆島)의 풍부한 자연을 배경으로, 전쟁을 겪은 격동의 시대를 초등학교 교사(다카미테 히데코 高峰秀子)와 제자들의 성장을 통하여 그리고 있다.
섬의 아름다운 자연을 찍기 위하여 장기간 로케이션을 했다는 점과 실내 장면에서는 세트 촬영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도록 한 배려가 장면 구석구석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초등학교의 창가만을 사용한 음악도 많은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기노시타는 데뷔 동년배(1943)인 구로사와 아키라(澤明)와 '남성영화의 구로사와, 여성영화의 기노시타'로 나란히 불리웠던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희극이나 멜로물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나, 이 한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일반 관객에게는 서정파 감독으로서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민병록(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소개 글.
전후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유명한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특히 여성영화의 거장으로 불리었다.
1930년 쇼치쿠(松竹)영화사에 입사한 후 1943년<꽃 피는 항구>로 데뷔한다. 군인일가의 대하드라마 <육군>(1944)을 통해서 모자간의 따뜻한 사랑과 이웃 간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깨어진 북>(1949). 일본 최초의 완전한 컬러영화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1951), <태양과 장미>(1956)로 이어지면서 부모에 대한 효행과 인간의 정을 강조한다. <일본의 비극>(1953)에서는 전후 일본인들의 부모효행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묘사하였고, <스물네 개의 눈동자>(1954)에서는 전후의 불행한 아이들을 모친처럼 다정한 여교사가 친자식처럼 가르치는 과정을 묘사해서 그의 일관된 주제를 읽을 수가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기노시타감독은 서정적인 감독으로서 일본에서 제1인자로 인정을 받았다. 흥행적으로도 성공한 이 작품은 일본영화잡지 '키네마준보'에서 베스트 일본영화 제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주제에 있어서도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를 받았고 특히 서정적인 경향을 가지면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전후 일본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인정을 받았다.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조그만 섬에서 장기 로케이션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정감이 풍요롭게 그려져 있어서 기노시타가 줄 곳 묘사해온 서정성이 듬뿍 표현되어 서정파 감독으로서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흥행성과 작품을 동시에 사랑을 받은 이유는 패전 후에 요구되었던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지난 시절 자신들은 이 영화 속의 아이들처럼 단순하고 무책임한 존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written by 홍성진
==
스물네 개의 눈동자 : 二十四の瞳,1954
iveen
2006. 5. 1. 22:08
24개의 눈동자 : 二十四の瞳,1954
감독 :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주연 : 타카미네 히데코(高峯秀子)
원작 : 츠보이 사카에(壺井栄)
출시사(예정) : (주)피터팬픽쳐스
<홍성진의 영화해설>
전 일본열도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었던 감동 대작. 섬을 배경으로 한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풍경화처럼 아름다우며, 그 속에 소박한 사람들의 사랑과 눈물이 녹아있다. 전국민적 흥행을 기록하면서 일본 열도가 열풍에 휩쓸리게 했던 영화.
츠네이시 후미꼬(常石史子: 동경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 소개 글.
일본 내에서 30개 이상의 영화상을 독점하고 국민적으로 대히트를 한 문자 그대로의 감동대작. 츠보이 사카에(壺井)가 1952년에 발표한 아동 소설을 기예의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介)가 각본, 감독. 쇼도시마(小豆島)의 풍부한 자연을 배경으로, 전쟁을 겪은 격동의 시대를 초등학교 교사(다카미테 히데코 高峰秀子)와 제자들의 성장을 통하여 그리고 있다.
섬의 아름다운 자연을 찍기 위하여 장기간 로케이션을 했다는 점과 실내 장면에서는 세트 촬영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도록 한 배려가 장면 구석구석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초등학교의 창가만을 사용한 음악도 많은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기노시타는 데뷔 동년배(1943)인 구로사와 아키라(澤明)와 '남성영화의 구로사와, 여성영화의 기노시타'로 나란히 불리웠던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희극이나 멜로물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나, 이 한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일반 관객에게는 서정파 감독으로서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민병록(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소개 글.
전후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유명한 기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특히 여성영화의 거장으로 불리었다.
1930년 쇼치쿠(松竹)영화사에 입사한 후 1943년<꽃 피는 항구>로 데뷔한다. 군인일가의 대하드라마 <육군>(1944)을 통해서 모자간의 따뜻한 사랑과 이웃 간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깨어진 북>(1949). 일본 최초의 완전한 컬러영화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1951), <태양과 장미>(1956)로 이어지면서 부모에 대한 효행과 인간의 정을 강조한다. <일본의 비극>(1953)에서는 전후 일본인들의 부모효행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묘사하였고, <스물네 개의 눈동자>(1954)에서는 전후의 불행한 아이들을 모친처럼 다정한 여교사가 친자식처럼 가르치는 과정을 묘사해서 그의 일관된 주제를 읽을 수가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기노시타감독은 서정적인 감독으로서 일본에서 제1인자로 인정을 받았다. 흥행적으로도 성공한 이 작품은 일본영화잡지 '키네마준보'에서 베스트 일본영화 제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주제에 있어서도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를 받았고 특히 서정적인 경향을 가지면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전후 일본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인정을 받았다.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조그만 섬에서 장기 로케이션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정감이 풍요롭게 그려져 있어서 기노시타가 줄 곳 묘사해온 서정성이 듬뿍 표현되어 서정파 감독으로서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흥행성과 작품을 동시에 사랑을 받은 이유는 패전 후에 요구되었던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지난 시절 자신들은 이 영화 속의 아이들처럼 단순하고 무책임한 존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written by 홍성진
==
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이야기
글 장상인
https://monthly.chosun.com/client/mcol/column_view.asp?Idx=133&Newsnumb=20190430897‘
“영화와 문화의 섬, 쇼도시마(小豆島)” 가가와(香川)현 ‘쇼도시마(小豆島)의 로드맵’을 들고서 다카마쓰(高松) 항에서 페리에 몸을 실었다. 페리의 이름은 올리브 라인(Olive Line)-쇼도시마는 다카마쓰에서 약 20km 떨어진 북동 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세토(瀬戸) 내해의 섬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천연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생물의 종류가 많으며, 일본 최초의 올리브 발상지이기도하다. 다카마쓰를 출발한 페리는 한 시간 여 만에 도노쇼항(土庄港)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서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담당 직원은 필자가 소지한 ‘쇼도시마의 로드맵’에 볼펜으로 표시를 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일차적 목적지 ‘평화의 군상’은 항구와 인접한 공원에 있었다. ‘평화의 군상’에 대한 안내문의 내용을 요약해서 옮겨본다. 본문이미지항구 근처에 있는 '평화의 군상'
<소설 ‘24개의 눈동자(瞳)’는 쇼도시마 출신 작가 쓰보이 사카에(壺井栄, 1899-1907)의 작품으로, 쇼와(昭和)시대 초기 다노우라 곶(岬)의 분교를 무대로 젊은 여교사 오이시(大石) 선생과 그의 제자 12명에 대한 이야기다. 쇼와 29년(1954년)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 1912-1998) 감독·다카미네 히데코(高峰秀子, 1924-2010) 주연으로 영화화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쇼와 31년(1956년) 11월 1일 제막됐다.> ‘평화의 군상’을 통해서 쇼도시마가 낳은 ‘쓰보이 사카에’의 불후의 명작 ‘스물네 개의 눈동자(瞳)’와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무장하고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영화 탄생 65년...여전히 인기 만점 본문이미지쇼도시마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자 스르르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에도 ‘24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광고문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좌석이 메워졌다. 동작이 늦은 사람은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서서가야 한다. 사람들이 많아서다. 영화가 상영된 지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인기 만점인 것이다. 버스는 속도에는 관심이 없는 듯,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섬마을의 골목길과 산길을 고불고불 돌면서 아주 느리게 달렸다. 버스의 느린 주행으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본문이미지[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포스터드디어 영화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영화마을 입구 매표소로 몰려갔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발 빠른 사람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일본인들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도 많았다. “선생님! 아무것도 해드릴 것은 없지만, 같이 울 수는 있습니다.”
입구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 스승과 같이 울어주는 제자가 몇이나 있을까?’
입구에서부터 궁핍(窮乏)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영화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 따라 춤을 췄다. “선생님! 놀아요.” 본문이미지[선생님! 놀아요]동상
쉬는 시간에 12명의 아이들이 교무실에 있는 오이시(大石) 선생을 불러내서 노는 모습이 동상으로 재현돼 있었다. 선생과 제자들이 함께 노는 모습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 영화마을 옆 바다도, 하늘도 맑고 푸르렀다. 신출내기 선생님과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본문이미지영화 마을과 바다와 하늘원작자의 소설에는 ‘세토(瀬戸) 내해의 어느 마을’로만 나올 뿐 구체적인 지명은 없다. 하지만, 영화는 작가의 고향이 쇼도시마(小豆島)이기에 무대를 이곳으로 설정하고, 촬영도 여기에서 했다. 영화가 히트를 친 이후 ‘스물네 개의 눈동자=쇼도시마’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소설이 처음으로 영화화된 이래 올해로 65년째입니다. 지금까지 영화화 2회, TV드라마 6회, TV애니메이션 1회 등 총 9회가 영상화되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연간 20만 명이 이곳 영화마을을 찾습니다. 일본인 17만 명, 3만 명이 한국, 중국 등 외국인들입니다. 올가을에도 드라마가 새로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영화 마을에 근무하는 다카오카 쇼헤이(高岡昌平·42)과장의 말이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본문이미지영화마을에 근무하는 다카오카 쇼헤이 과장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7년 후(1952년)에 발표 된 소설은 작가 자신이 전시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전쟁 중에 일반 서민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비극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기조(基調)에는 평화가 깔려 있습니다...특히, 일본인들은 ‘교육의 원점이 여기에 있다’면서 이곳을 찾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도 옛날과는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가 달라진지 오래지 않는가. 이는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영화마을에는 쇼와 시대 학교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필자는 그 당시의 책상과 걸상, 오르간과 아이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잠시 동심(童心)으로 돌아갔다. 쓰보이 사카에의 인생 스토리 영화마을 곳곳을 한 바퀴 돌아본 후 필자는 ‘쓰보이 사카에(壺井栄)’의 문학관으로 갔다. 문학관 입구에는 작가의 이력과 작품에 대한 내용이 원고지의 형태로 쓰여 있었다. 본문이미지문학관 입구의 원고지 형식의 안내문
<쓰보이 사카에는 1899년 8월 5일 쇼도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간장독 장인(職人)으로 낙천적인 성격이었고, 어머니는 철저한 규범주의 여인이었다. 사카에(栄)는 나이카이(内海)고등소학교를 졸업했으며, 16세의 봄부터 우체국과 마을사무소 등에 근무하면서 문학서를 읽었다.
1925년 고향 선배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 1897-1975)를 따라 상경했고, 그와 결혼했다. 남편 시게지(繁治)는 프롤레타리아 시인. 사카에(栄)는 남편의 영향을 받아 1938년 처녀작 <무의 잎>을 발표했다. 이후 <달력> <첫 여행> <어머니 없는 자식과 자식 없는 어머니 >등 300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했다. 신초 문예상, 아동 문학상, 문부과학대신 상(賞) 등을 수상했다.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전시(戰時) 중의 여교사와 생도와의 만남을 묘사했다. 전쟁이 초래한 불행을 호소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강한 바람이 독자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많은 작품을 썼으나 병으로 쇼와 42년(1907년) 6월 23일 도쿄에서 사망했다. 향년 67세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의 작품 속으로 본문이미지쓰보이 사카에(사진: 야후재팬)1928년(昭和 3年) 보통 선거가 실시되는 한편 치안 유지법 처벌이 엄격해진 어느 날, ‘여학교 사범과’를 갓 졸업한 오이시 히사코(大石久子)는 섬의 곶(岬)분교에 부임한다. 일학년생 12명(남자 5명, 여자 7명)의 아동들은 각각 개성에 빛나는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오이시 선생은 ‘이 눈동자들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젊고 명랑한 오이시(大石)는 아이들과 친해진다. 그러나,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양장 차림으로 등교하는 선생은 ‘하이칼라’라는 것을 이유로 보수적인 마을 어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소한 오해로 매도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선생님 편이었다. 그러던 중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이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서 아킬레스 건(腱)이 파열돼 출근을 못한다. 선생님을 한결 같이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마을 어른들의 태도도 부드러워진다...오이시 선생은 ‘스물네 개의 눈동자’들과 헤어진다. 분교를 떠나 본교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발언이 어려워지고 애국이 강요되는 시기가 계속된다. 오이시는 선원인 남자와 결혼한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오이시의 남편은 군대에 끌려간다. 전쟁은 오이시 선생에게 큰 아픔을 안긴다. 남편이 해전(海戦)에서 전사한 것이다. 불행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법. 어머니도, 막내딸도, 병으로 죽는다. 본문이미지그대로 남아 있는 곶(岬) 분교와 선생의 자전거
오이시는 전쟁이 끝난 후(1946년) 다시 보결 교사로 분교에 돌아온다. 어린 아동들 중에는 12명 제자들의 친척도 있었다. 오이시 선생은 처음 만났던 12명 아이들의 모습과 새로운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돼 눈물을 흘린다. 그런 이유로 ‘울보 선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소설은 오이시 선생이 옛 제자들과 만나 맥주잔을 돌리면서 끝을 맺는다. 대미(大尾)는 제자 ‘마즈노’의 창가.
“봄날 높은 누각의 꽃 잔치로다 돌리는 술잔에 그림자 어른 거리네” <자신의 미성(美聲)에 ‘빠져들기라도 했다’는 듯 ‘마즈노’는 눈을 감고 불렀다. 노래는 6학년 때 학예회에서 마지막 순서로 그녀가 독창으로 불러서 인기를 끌었던 창가였다. (옛 친구) ‘사나에’가 갑자기 ‘마즈노’의 등에 매달려 흐느꼈다.> 필자는 이 소설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는 사람과 통화했다. 그는 다름 아닌 소설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번역한 박현석(48)씨다. 그의 말이다. “번역하는 동안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은 작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여선생님의 진심과, 그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순수한 신뢰가 사제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료: 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https://mon500.com/entry/24%EA%B0%9C%EC%9D%98-%EB%88%88%EB%8F%99%EC%9E%90-%EC%A0%84%EC%9F%81-%EA%B5%90%EC%9C%A1-%EA%B0%90%EB%8F%99영화 *24개의 눈동자(二十四の瞳)*는 1954년 일본에서 개봉해이후 세대를 거쳐 사랑받아온 불멸의 걸작이다. 시코쿠의 작은 섬마을을 무대로, 한 여성 교사와 그녀의 열두 명 제자들이 함께한시간과 그 속에서 마주한 성장, 이별, 전쟁의 상처를 담담히 그려낸다. 작품은 단순히 교사와 학생 간의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그치카테고리 없음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by 지식 마루 2025. 8. 12.지식 마루 구독하기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1/6지 않고, 교육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시대와 사회 속에서 교육이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또한 일본 전후 영화사 속에서 보기 드문 휴머니즘 영화로, 기노시타 게이사케감독 특유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전쟁’, ‘교육’, ‘감동’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24개의 눈동자의핵심 주제와 메시지를 분석한다.평화를 갈망하게 만드는 잔혹한 현실영화의 가장 큰 축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한 마을과한 세대에 끼친 영향이다. 초반부에서 우리는 푸른 바다와 섬마을의 정겨운 풍경,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보며 평온한 시절을 만끽한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2/6다. 그러나 일본이 점차 군국주의 체제에 들어서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면서 마을에도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남학생들이 군대에 징집되고, 여성들은 전쟁 물자 생산과 가정 유지에몰두하며, 남겨진 이들은 불안과 상실 속에서 살아간다. 기노시타감독은 전쟁의 참상을 피와 폭탄이 아닌, 일상에서의 결핍과 사람들의 표정 변화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교실의 빈자리와 가족을잃은 학생의 굳은 표정, 돌아오지 못한 제자들의 이름이 호출되지않는 장면들은 말보다 더 강한 비극성을 전한다. 또한 감독은 전쟁을 국가의 필요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 담론을 비판적으로바라본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사람을 죽이는 법이 아니라서로 돕고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이 영화가오늘날에도 공감대를 얻는 이유는, 전쟁이 특정 국가의 과거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인류의 비극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개인의 꿈과 공동체의 유대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평화가 왜 지켜져야 하는지를, 영화는 잔잔하지만결코 가볍지 않게 보여준다.한 교사의 신념과 헌신24개의 눈동자의 중심 인물 오이시 선생은 그 당시 일본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자유롭고 진취적인 여성 교사다.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부임하던 첫 장면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인상을 준다. 일부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서양식’이라며 거리를 두지만,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의 마음을열기 위해 진심을 다한다. 그녀의 교육 철학은 성적과 경쟁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인격과 마음을 키우는 데 있다. 전쟁 전의 평화로운 시절,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자연 속에서 수업을 하며, 삶과 학문을 연결짓는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교육 현장은 국가의 통제 하에 들어가고, 아이들에게 군국주의적가치가 주입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도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이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 전후, 오이시 선생은나이가 들어서도 제자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녀와 제자들 사이의 관계는 졸업과 함께 끝나지 않고,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이 점은 현대 사회에서도 교육의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3/6본질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와신뢰라는 사실을 일깨운다.잃어버린 것과 남겨진 것의 이야기이 영화의 감동은 단순한 비극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져버린 것과 끝내 남아 있는 것의 대비에서 비롯된다. 전쟁은 아이들의 미래와 꿈, 한 마을의 평온을 앗아갔지만, 스승과 제자 간의 유대와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나이가 든 오이시 선생이 옛 제자들과 재회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끈끈한 연결이 남아 있다. 기노시타 감독은 이러한 감정을 자연 풍경과 음악으로 배가시킨다. 시코쿠 섬의 바다, 계절의 변화, 오래된교실의 풍경은 변치 않는 배경이 되어, 인물들의 변화와 상실을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영화는 교훈적이면서도 지나치게설교적이지 않은 대사와 장면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비극 속에서도 인간애와 희망이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온다. 영화는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들고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과장되지 않은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으로전한다.결론: 시대를 넘어 울림을 주는 휴머니즘의 명작24개의 눈동자는 일본 전후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한 교사의 헌신과 사랑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교육의 본질, 평화의 가치, 인간 관계의 힘을 성찰하게 한다. 오늘날의 관객도 이 영화를 보며, 역사적 사건의 교훈을 다시금 떠올리고, 현재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되새길 수있다. 감동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4/6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라는 사실을24개의 눈동자는 증명한다.
==
<소설 ‘24개의 눈동자(瞳)’는 쇼도시마 출신 작가 쓰보이 사카에(壺井栄, 1899-1907)의 작품으로, 쇼와(昭和)시대 초기 다노우라 곶(岬)의 분교를 무대로 젊은 여교사 오이시(大石) 선생과 그의 제자 12명에 대한 이야기다. 쇼와 29년(1954년)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 1912-1998) 감독·다카미네 히데코(高峰秀子, 1924-2010) 주연으로 영화화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쇼와 31년(1956년) 11월 1일 제막됐다.> ‘평화의 군상’을 통해서 쇼도시마가 낳은 ‘쓰보이 사카에’의 불후의 명작 ‘스물네 개의 눈동자(瞳)’와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무장하고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영화 탄생 65년...여전히 인기 만점 본문이미지쇼도시마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자 스르르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에도 ‘24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광고문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좌석이 메워졌다. 동작이 늦은 사람은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서서가야 한다. 사람들이 많아서다. 영화가 상영된 지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인기 만점인 것이다. 버스는 속도에는 관심이 없는 듯,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섬마을의 골목길과 산길을 고불고불 돌면서 아주 느리게 달렸다. 버스의 느린 주행으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본문이미지[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포스터드디어 영화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우르르 영화마을 입구 매표소로 몰려갔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발 빠른 사람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일본인들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도 많았다. “선생님! 아무것도 해드릴 것은 없지만, 같이 울 수는 있습니다.”
입구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오늘날 스승과 같이 울어주는 제자가 몇이나 있을까?’
입구에서부터 궁핍(窮乏)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영화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 따라 춤을 췄다. “선생님! 놀아요.” 본문이미지[선생님! 놀아요]동상
쉬는 시간에 12명의 아이들이 교무실에 있는 오이시(大石) 선생을 불러내서 노는 모습이 동상으로 재현돼 있었다. 선생과 제자들이 함께 노는 모습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 영화마을 옆 바다도, 하늘도 맑고 푸르렀다. 신출내기 선생님과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본문이미지영화 마을과 바다와 하늘원작자의 소설에는 ‘세토(瀬戸) 내해의 어느 마을’로만 나올 뿐 구체적인 지명은 없다. 하지만, 영화는 작가의 고향이 쇼도시마(小豆島)이기에 무대를 이곳으로 설정하고, 촬영도 여기에서 했다. 영화가 히트를 친 이후 ‘스물네 개의 눈동자=쇼도시마’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소설이 처음으로 영화화된 이래 올해로 65년째입니다. 지금까지 영화화 2회, TV드라마 6회, TV애니메이션 1회 등 총 9회가 영상화되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연간 20만 명이 이곳 영화마을을 찾습니다. 일본인 17만 명, 3만 명이 한국, 중국 등 외국인들입니다. 올가을에도 드라마가 새로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영화 마을에 근무하는 다카오카 쇼헤이(高岡昌平·42)과장의 말이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본문이미지영화마을에 근무하는 다카오카 쇼헤이 과장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7년 후(1952년)에 발표 된 소설은 작가 자신이 전시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전쟁 중에 일반 서민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비극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기조(基調)에는 평화가 깔려 있습니다...특히, 일본인들은 ‘교육의 원점이 여기에 있다’면서 이곳을 찾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도 옛날과는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가 달라진지 오래지 않는가. 이는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영화마을에는 쇼와 시대 학교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필자는 그 당시의 책상과 걸상, 오르간과 아이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잠시 동심(童心)으로 돌아갔다. 쓰보이 사카에의 인생 스토리 영화마을 곳곳을 한 바퀴 돌아본 후 필자는 ‘쓰보이 사카에(壺井栄)’의 문학관으로 갔다. 문학관 입구에는 작가의 이력과 작품에 대한 내용이 원고지의 형태로 쓰여 있었다. 본문이미지문학관 입구의 원고지 형식의 안내문
<쓰보이 사카에는 1899년 8월 5일 쇼도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간장독 장인(職人)으로 낙천적인 성격이었고, 어머니는 철저한 규범주의 여인이었다. 사카에(栄)는 나이카이(内海)고등소학교를 졸업했으며, 16세의 봄부터 우체국과 마을사무소 등에 근무하면서 문학서를 읽었다.
1925년 고향 선배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 1897-1975)를 따라 상경했고, 그와 결혼했다. 남편 시게지(繁治)는 프롤레타리아 시인. 사카에(栄)는 남편의 영향을 받아 1938년 처녀작 <무의 잎>을 발표했다. 이후 <달력> <첫 여행> <어머니 없는 자식과 자식 없는 어머니 >등 300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했다. 신초 문예상, 아동 문학상, 문부과학대신 상(賞) 등을 수상했다.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전시(戰時) 중의 여교사와 생도와의 만남을 묘사했다. 전쟁이 초래한 불행을 호소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강한 바람이 독자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많은 작품을 썼으나 병으로 쇼와 42년(1907년) 6월 23일 도쿄에서 사망했다. 향년 67세로.> ‘스물네 개의 눈동자’의 작품 속으로 본문이미지쓰보이 사카에(사진: 야후재팬)1928년(昭和 3年) 보통 선거가 실시되는 한편 치안 유지법 처벌이 엄격해진 어느 날, ‘여학교 사범과’를 갓 졸업한 오이시 히사코(大石久子)는 섬의 곶(岬)분교에 부임한다. 일학년생 12명(남자 5명, 여자 7명)의 아동들은 각각 개성에 빛나는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오이시 선생은 ‘이 눈동자들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젊고 명랑한 오이시(大石)는 아이들과 친해진다. 그러나,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양장 차림으로 등교하는 선생은 ‘하이칼라’라는 것을 이유로 보수적인 마을 어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소한 오해로 매도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선생님 편이었다. 그러던 중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이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서 아킬레스 건(腱)이 파열돼 출근을 못한다. 선생님을 한결 같이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마을 어른들의 태도도 부드러워진다...오이시 선생은 ‘스물네 개의 눈동자’들과 헤어진다. 분교를 떠나 본교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발언이 어려워지고 애국이 강요되는 시기가 계속된다. 오이시는 선원인 남자와 결혼한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오이시의 남편은 군대에 끌려간다. 전쟁은 오이시 선생에게 큰 아픔을 안긴다. 남편이 해전(海戦)에서 전사한 것이다. 불행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법. 어머니도, 막내딸도, 병으로 죽는다. 본문이미지그대로 남아 있는 곶(岬) 분교와 선생의 자전거
오이시는 전쟁이 끝난 후(1946년) 다시 보결 교사로 분교에 돌아온다. 어린 아동들 중에는 12명 제자들의 친척도 있었다. 오이시 선생은 처음 만났던 12명 아이들의 모습과 새로운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돼 눈물을 흘린다. 그런 이유로 ‘울보 선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소설은 오이시 선생이 옛 제자들과 만나 맥주잔을 돌리면서 끝을 맺는다. 대미(大尾)는 제자 ‘마즈노’의 창가.
“봄날 높은 누각의 꽃 잔치로다 돌리는 술잔에 그림자 어른 거리네” <자신의 미성(美聲)에 ‘빠져들기라도 했다’는 듯 ‘마즈노’는 눈을 감고 불렀다. 노래는 6학년 때 학예회에서 마지막 순서로 그녀가 독창으로 불러서 인기를 끌었던 창가였다. (옛 친구) ‘사나에’가 갑자기 ‘마즈노’의 등에 매달려 흐느꼈다.> 필자는 이 소설에 대해 남다른 감회가 있는 사람과 통화했다. 그는 다름 아닌 소설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번역한 박현석(48)씨다. 그의 말이다. “번역하는 동안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몸은 작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여선생님의 진심과, 그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순수한 신뢰가 사제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료: 스물네 개의 눈동자 영화마을/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https://mon500.com/entry/24%EA%B0%9C%EC%9D%98-%EB%88%88%EB%8F%99%EC%9E%90-%EC%A0%84%EC%9F%81-%EA%B5%90%EC%9C%A1-%EA%B0%90%EB%8F%99영화 *24개의 눈동자(二十四の瞳)*는 1954년 일본에서 개봉해이후 세대를 거쳐 사랑받아온 불멸의 걸작이다. 시코쿠의 작은 섬마을을 무대로, 한 여성 교사와 그녀의 열두 명 제자들이 함께한시간과 그 속에서 마주한 성장, 이별, 전쟁의 상처를 담담히 그려낸다. 작품은 단순히 교사와 학생 간의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그치카테고리 없음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by 지식 마루 2025. 8. 12.지식 마루 구독하기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1/6지 않고, 교육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시대와 사회 속에서 교육이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또한 일본 전후 영화사 속에서 보기 드문 휴머니즘 영화로, 기노시타 게이사케감독 특유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전쟁’, ‘교육’, ‘감동’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24개의 눈동자의핵심 주제와 메시지를 분석한다.평화를 갈망하게 만드는 잔혹한 현실영화의 가장 큰 축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한 마을과한 세대에 끼친 영향이다. 초반부에서 우리는 푸른 바다와 섬마을의 정겨운 풍경,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보며 평온한 시절을 만끽한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2/6다. 그러나 일본이 점차 군국주의 체제에 들어서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면서 마을에도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남학생들이 군대에 징집되고, 여성들은 전쟁 물자 생산과 가정 유지에몰두하며, 남겨진 이들은 불안과 상실 속에서 살아간다. 기노시타감독은 전쟁의 참상을 피와 폭탄이 아닌, 일상에서의 결핍과 사람들의 표정 변화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교실의 빈자리와 가족을잃은 학생의 굳은 표정, 돌아오지 못한 제자들의 이름이 호출되지않는 장면들은 말보다 더 강한 비극성을 전한다. 또한 감독은 전쟁을 국가의 필요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 담론을 비판적으로바라본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사람을 죽이는 법이 아니라서로 돕고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이 영화가오늘날에도 공감대를 얻는 이유는, 전쟁이 특정 국가의 과거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인류의 비극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개인의 꿈과 공동체의 유대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평화가 왜 지켜져야 하는지를, 영화는 잔잔하지만결코 가볍지 않게 보여준다.한 교사의 신념과 헌신24개의 눈동자의 중심 인물 오이시 선생은 그 당시 일본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자유롭고 진취적인 여성 교사다.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부임하던 첫 장면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인상을 준다. 일부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서양식’이라며 거리를 두지만,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의 마음을열기 위해 진심을 다한다. 그녀의 교육 철학은 성적과 경쟁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인격과 마음을 키우는 데 있다. 전쟁 전의 평화로운 시절,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자연 속에서 수업을 하며, 삶과 학문을 연결짓는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교육 현장은 국가의 통제 하에 들어가고, 아이들에게 군국주의적가치가 주입되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도 오이시 선생은 아이들이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 전후, 오이시 선생은나이가 들어서도 제자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녀와 제자들 사이의 관계는 졸업과 함께 끝나지 않고,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이 점은 현대 사회에서도 교육의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3/6본질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와신뢰라는 사실을 일깨운다.잃어버린 것과 남겨진 것의 이야기이 영화의 감동은 단순한 비극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져버린 것과 끝내 남아 있는 것의 대비에서 비롯된다. 전쟁은 아이들의 미래와 꿈, 한 마을의 평온을 앗아갔지만, 스승과 제자 간의 유대와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나이가 든 오이시 선생이 옛 제자들과 재회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끈끈한 연결이 남아 있다. 기노시타 감독은 이러한 감정을 자연 풍경과 음악으로 배가시킨다. 시코쿠 섬의 바다, 계절의 변화, 오래된교실의 풍경은 변치 않는 배경이 되어, 인물들의 변화와 상실을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영화는 교훈적이면서도 지나치게설교적이지 않은 대사와 장면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비극 속에서도 인간애와 희망이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온다. 영화는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들고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과장되지 않은 이야기와 따뜻한 시선으로전한다.결론: 시대를 넘어 울림을 주는 휴머니즘의 명작24개의 눈동자는 일본 전후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한 교사의 헌신과 사랑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교육의 본질, 평화의 가치, 인간 관계의 힘을 성찰하게 한다. 오늘날의 관객도 이 영화를 보며, 역사적 사건의 교훈을 다시금 떠올리고, 현재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되새길 수있다. 감동은 단순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25. 8. 29. 오후 4:53 24개의 눈동자 - 전쟁, 교육, 감동https://mon500.com/entry/24개의-눈동자-전쟁-교육-감동 4/6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라는 사실을24개의 눈동자는 증명한다.
==
https://noproblemmylife.tistory.com/2420
==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일본영화 명작 베스트 스물네 개의 눈동자 (/2420)
영화 보는 즐거움/뜻밖의 추천작 (/category/%EC%98%81%ED%99%94%20%EB%B3%B4%EB%8A%94%20%EC%A6%90%EA%B1%B0%EC%9B%80/%EB%9C%BB%EB%B0%96%EC%9D%98%20%EC%B6%94
2018. 4. 23. 00:30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스물네 개의 눈동자)' 1954년 제작 일본영화 드라마, 런닝타임 156분, 연출- 키
노시타 케이스케, 출연- 타카미네 히데코 등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영화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를 보았습니다. '타카미네 히데코' 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1954년에 제작된 드라마로, 현재 imdb 평점은 8.1점입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1955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엔 실패하였고, 같은 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오늘은 기대했던걸 훨씬 뛰어넘는, 아주 재미나고 감동적인 좋은 영화 한편 보았습니다. 한 시골마을 외딴 분교에 부임하게
되는 여선생의 이야기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작품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보는 내
내 감동받고 울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이였습니다.
영화가좋다 구독하기
25. 8. 29. 오후 4:56 영화가좋다 ::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일본영화 명작 베스트 스물네 개의 눈동자
https://noproblemmylife.tistory.com/2420 1/6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주인공은 외딴 시골마을 분교에 부임하게 됩니다. 1학년을 맡은 그녀에겐 12명의 꼬맹이들이 배정되
는데...
어떤 아이는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또 어떤 아이는 이루고자 하는 꿈 때문에 가출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집안이 망
해버려 온 식구가 야밤도주를 하고... 그런 와중에 전쟁이 터져 어떤 아이는 전사하고 또 어떤 아이는 장님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모든 상황들을 한 여교사는 오랜시간 지켜보며 함께 걱정하고 슬퍼하는데, 그런 그들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보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을 줍니다.
요즘은 자주 접할 수 없는, 혹은 이런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로밖에 접할 수 없는 이야기여서 더욱 감동적이였던것 같습니
다. 한 선생이 살아온 20년 가량의 인생이야기로, 좋은 영화라는 설명 외에 무슨말이 더 필요할까 싶네요. 너무나도 아름답고
선한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자국인 일본에 대한 냉철한 시선이 담긴 이야기여서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다른 일본영화들의 특징인, 전쟁에 대한 어줍잖은 변명이나 자기 위안은 없이, 그냥 그 시절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덤덤히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잘못된 교육 방식이나 편협한 교육환경에 대한 지조있는 일갈은 그냥 단순한 드라마로서의 재
미와 감동을 넘어서는 묵직한 무게감까지 담겨있는데, 좋은 드라마이며 좋은 사회파영화 좋은 반전영화이기도 했습니다.
25. 8. 29. 오후 4:56 영화가좋다 ::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일본영화 명작 베스트 스물네 개의 눈동자
https://noproblemmylife.tistory.com/2420 2/6
영화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150분을 넘어서는 긴 런닝타임동안 특별한 악역하나, 특별한 반전하나, 특이한 에피소드 하나없이, 보는내내 감동으로 물들
입니다.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절대 가볍지만은 않고, 굉장히 감상적이지만 그만큼 무게감도 있는 작품... 여하튼 감동적이며
교훈적이며 사랑스럽고 등등, 좋은 단어란 단어는 모두 붙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니, 기회가 되면 놓치지 마시길 권해드립
니다. 제가 본 영화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는 그랬습니다.
참고로 아래는 비슷한 시기(1960년)에 만들어진 일본영화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구
요.
추천영화...▶벌거벗은 섬(Naked Island)... 신도 가네토, 오토와 노부코, 토노야마 타이지... 인상적인 일본 무성영화
(http://noproblemmylife.tistory.com/2112)
아래는, 키네마준보에서 선정한 올타임 일본영화 명작 베스트 100편입니다. 오늘 본 영화 '24개의 눈동자(Twenty-Four
Eyes)' 역시나 이 목록에 포함된 작품으로, 일본영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추천일본영화목록... ▶ 꼭 봐야할 일본영화 추천 목록... 키네마준보 선정 올타임 일본영화 베스트 100편...
(http://noproblemmylife.tistory.com/1547)
그러면 재미난 영화 좋은 영화 많이들 즐기시길...
====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