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îstan, Land of Roses

영화, 취미 - Gulîstan 요약 해석

Gulîstan, Land of Roses — 요약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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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lîstan, Land of Roses>(2016) — 요약·해석

<굴리스탄, 장미의 땅>은 쿠르드계 캐나다 감독 Zaynê Akyol(자이네 아키올)이 만든 86분짜리 다큐멘터리다. 캐나다·독일 공동제작으로, 이라크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서 촬영되었다. 영화는 당시 Kurdistan Workers' Party(PKK) 계열 여성 게릴라들이 Islamic State(ISIS)에 맞서 싸우던 시기를 기록한다. 공식 소개 역시 이 영화를 단순한 전투 기록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세계관을 지키려는 여성들의 일상과 신념을 담은 친밀한 초상으로 설명한다.

1. 줄거리 — 사실은 ‘전쟁 이야기’가 거의 없다

영화의 배경은 쿠르디스탄의 산과 황량한 평원이다.

젊은 여성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채 산속 캠프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군사훈련을 받고, 경계근무를 하고, 총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함께 이야기한다. 멀리서는 ISIS와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지만 영화 대부분에서 실제 전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오히려 <기다림>을 찍는다.

여성들은 왜 가족을 떠났는가, 왜 결혼과 가정생활을 포기했는가, 왜 총을 들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어떤 여성은 가족과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을 말한다. 어떤 여성은 쿠르드 민족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또 어떤 여성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해방을 강조한다.

이들의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규율화되어 있다.

개인 소유는 거의 없다. 연애와 결혼도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의 욕망보다 조직과 혁명이 우선한다. 여성들은 서로를 ‘동지’로 대하고 집단적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을 딱딱한 군인으로 찍지 않는다.

그들은 웃고, 농담하고, 서로 머리를 빗어준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본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삶을 즐긴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총을 든 여성의 모습보다 <총을 든 채 웃는 젊은 여성의 얼굴>이다.

감독의 원래 출발점은 ‘굴리스탄’이라는 한 여성이었다. 굴리스탄은 감독이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알았던 인물이자 돌봐주던 언니 같은 존재였으며, 이후 쿠르드 게릴라에 합류해 2000년에 사망했다. 감독은 처음에는 그녀를 찾아 그 삶을 추적하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영화의 중심은 ‘한 명의 굴리스탄’에서 ‘굴리스탄과 같은 수많은 여성들’로 이동했다.

따라서 제목의 <Gulîstan>은 한 여성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상징이다.

페르시아어와 쿠르드 문화권에서 ‘굴리스탄’은 문자 그대로 <장미의 땅, 장미 정원>을 뜻한다.

그러나 영화 속 ‘장미의 땅’은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다.

돌과 먼지와 총과 죽음의 산이다.

바로 이 역설이 영화의 중심 이미지다.


2.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전사’가 아니다

처음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여성 게릴라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다.

서구 언론에서도 당시 쿠르드 여성 전사들은 대단히 매력적인 이미지였다. ‘ISIS와 싸우는 용감한 여성들’, ‘총을 든 페미니스트’라는 이미지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아키올의 영화는 조금 다르다.

그녀가 보여주려는 것은 <여성도 남자처럼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은 이것이다.

<이 여성들은 왜 자유를 얻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는가?>

이 질문은 상당히 불편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해방은 교육, 직업, 경제적 독립, 정치 참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여성들에게 해방은 <가족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
  • 남편이 될 남자를 거부한다.
  • 결혼을 거부한다.
  • 어머니가 되는 길도 포기한다.
  • 그리고 산으로 간다.

이 점에서 영화는 중동의 여성해방에 대해 매우 급진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족 자체가 여성 억압의 첫 번째 정치 제도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PKK의 여성해방 사상은 바로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왔다. 영화 속 여성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단순한 쿠르드 민족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제에 대한 혁명으로 이해한다. 영화 소개 자료도 이들의 공동체가 여성 역량 강화와 자유를 중심으로 한 혁명적 이상을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세진님이 최근 보신 이란 여성 영화들과 비교하면 이 점이 특히 흥미롭다.

<My Favourite Cake>의 여성은 <자기 집 안에서 작은 자유를 만든다>.

<The Seed of the Sacred Fig>의 여성들은 <가족 내부에서 국가 권력과 충돌한다>.

그러나 <Gulîstan>의 여성들은 말한다.

<집 자체를 떠나겠다.>

이것은 훨씬 더 급진적인 선택이다.


3. 그런데 정말 자유로운가?

여기서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중요한 비판적 질문이 생긴다고 본다.

이 여성들은 가부장적 가족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간 곳은 <혁명 조직>이다.

가족의 규율 대신 조직의 규율이 있다.

  • 결혼을 하지 않는다.
  • 연애도 하지 않는다.
  • 개인의 욕망을 억제한다.
  • 조직의 명령에 따른다.
  • 죽을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피할 수 없다.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이 조직에 대한 완전한 헌신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

영화는 이 문제를 직접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여성들에게 상당한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있다. 감독 자신이 쿠르드계이고, 어린 시절의 굴리스탄에 대한 개인적 기억에서 영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분명히 <낭만화>의 위험이 있다.

  • 산은 너무 아름답다.
  • 여성들은 너무 지적이고 진지하다.
  • 그들의 우정은 아름답다.
  • 그들의 죽음은 숭고하게 느껴진다.

카메라의 미학 자체가 게릴라 생활을 일종의 <영적 공동체>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로 영화제 평에서도 이 작품의 정교한 화면 구성과 정치적 투쟁을 인간적·교육적 프로젝트로 포착하는 방식이 높이 평가되었다.

나는 이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라고 본다.

<PKK 내부의 권력관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명령에 반대하는 여성은 없다.
  • 조직을 떠나고 싶다는 여성도 없다.
  • 후회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없다.

즉 영화는 <신념을 가진 사람의 내부>는 훌륭하게 보여주지만, <그 신념을 만드는 조직의 내부>는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4. 세진님이 이란 영화들을 보면서 던진 질문과 연결된다

최근 세진님은 이란 영화를 보면서 계속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독재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

<Gulîstan>을 보면서 나는 그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명을 믿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서구 사회에서는 흔히 이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본다.

하나는 ‘테러리스트’다.

다른 하나는 ‘자유의 여전사’다.

아키올 감독은 첫 번째 시각을 완전히 거부한다.

그러나 두 번째 이미지에는 상당히 가까이 간다.

나는 오히려 세 번째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은 특정한 역사와 사회 속에서 혁명을 삶의 의미로 선택한 인간들이다.>

이렇게 보면 영화가 훨씬 깊어진다.

이 여성들은 단지 ISIS 때문에 총을 든 것이 아니다.

ISIS가 사라져도 이들의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이 싸우는 대상은 ISIS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터키 국가주의.

쿠르드 억압.

가부장제.

전통적 가족제도.

자본주의적 개인주의.

이 모든 것이 이들의 적이다.

따라서 총은 군사적 무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상징>이다.


5. 나의 평론 — 이것은 뜻밖에도 ‘종교 영화’에 가깝다

세진님이 이 영화를 보신다면 나는 한 가지를 특히 주목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여성들의 생활은 수도원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 가족을 떠난다.
  • 결혼하지 않는다.
  • 개인 재산을 버린다.
  • 공동생활을 한다.
  •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 하나의 사상을 공부한다.
  • 개인의 욕망보다 더 큰 목적에 자신을 바친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 총만 빼면 수도공동체와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Gulîstan, Land of Roses>를 단순한 정치 다큐멘터리보다 <세속적 수도공동체에 관한 영화>로 읽는 편이 더 흥미롭다고 본다.

세진님의 퀘이커적 관심과도 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있다.

물론 퀘이커는 비폭력 평화주의이고 이들은 무장투쟁을 선택했다. 그 차이는 근본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아를 넘어 공동체적 진리에 헌신한다>는 구조에는 묘한 유사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 나온다.

<신념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삶은 아름다운가, 위험한가?>

이 영화의 대답은 거의 분명하다.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영화가 끝난 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점에서 <Gulîstan, Land of Roses>는 <여성 전사 영화>라기보다 <혁명이 인간에게 종교가 되는 순간을 찍은 영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바로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깊고도 불편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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